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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시니어의 인지 능력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세상이다. 피트니스 센터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돌아섰는데 벽에 걸어두었던 가방이 없어졌다. 청소원이 치웠나, 아니면 누가 훔쳐갔나. 아무튼 큰일 났다. 가방에는 지갑, 전화기, 자동차 열쇠 등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두리번거리며 찾다 보니 건너편 사우나 벽에 내 가방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가방이 열려있다. 지갑부터 열어보았다. 신용카드는 물론 현금도 그대로 있었다. 전화기와 자동차 열쇠도 그대로였다.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누가 이 장난을 했을까. 장난이 너무 심했다.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가방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수수께끼가 풀렸다. 벤치에 앉아 있던 한 시니어가 “그 가방이 당신 것이었소?”라고 묻는 게 아닌가. 그는 가방이 본인 것인 줄 알고 건드렸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69세인데 정신이 맑지 않고 판단력이 흐려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항상 자동차 열쇠와 전화기를 어디 놓아두었는지 몰라서 에어 택(air tag)이라는 추적 장치를 가지고 다닌다며 보여주었다.     얼마 전 내게도 황당한 일이 있었다. 늘 다니는 약국 앞에 차를 주차하고 문을 닫고 나왔는데, 차가 뒤로 굴러가는 게 아닌가. 이곳 주차장은 약간 경사가 있다. 얼른 달려가 차 문을 열고 보니 기어가 후진(R)에 있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주차(P)로 바꿨다. 주차 중에 통화하다가 기어 바꾸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이는 인지 능력의 문제다. 만약 그때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이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시니어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끔 말실수도 한다. 종종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때와 열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 두 달 전쯤 폭염 속 농장 노동자를 위한 직업 안전 규정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구글을 통해 검색했더니 ‘농사는 힘들다’는 내 글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내 글이 나온 경위를 따졌다. 구글 검색으로도 내 글을 볼 수 있으면 좋아할 일이건만  오히려 불평을 한 셈이다.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될 것을 입을 열어 무식이 탄로 난 꼴이 됐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명언 가운데 ‘It is better to remain silent and be thought a fool than speak out and remove all doubt.(입을 열어 무식을 확인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무식을 의심받아라)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긴다.     아직 남의 가방을 내 가방이라고 인지할 정도로 정신이 몽롱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인지 능력 유지를 위해 매일 한 시간 운동, 한 시간 독서를 하고 있다. 앞으로는 벽 대신 가방을 보며 샤워를 해야겠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시니어 인지 인지 능력 자동차 열쇠 지갑 전화기

2024-09-08

[이 아침에] 나에게 묻는다

몇 년 전 친한 언니와 산후안카피스트라노 수도원에 가려고 기차를 탔다. 바깥 풍경을 보며 한가롭게 얘기 나누다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기차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리려던 대여섯 사람들도 너무 황당해하고 있는데 기차는 서서히 움직였다. 상당히 먼 구간을 지나 다음 역인 샌클레멘테역에서 하차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 역은 자동판매기로 티켓을 발매하는 무인 시스템의 역사였다.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해야 하나? 그때 같이 내린 한 사람과 불만을 토로하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아내가 산후안카피스트라노역에 마중 나왔다가 여기까지 따라 왔다고 했다. 그리고 차 안에는 아기용 의자가 있어서 우리를 태울 수 없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철도 당국에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했다. 그는 플랫폼의 전화 박스에서 수화기를 들고 한참 통화하다가 다른 번호를 누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급기야 점점 언성까지 높였다. 한참 만에 전화를 끊고는 우리에게 여기 있으면 LA로 가는 엠트랙이 올 것이고 그 기차를 타면 된다고 했다.     세상에나! 우리의 언어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당신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면 그것이 갚는 길이라고 했다. 역사 밖에는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이 역은 앰트랙이 그냥 통과하는 곳이지만 몇 분 뒤 기차가 서고 승무원이 내리더니 웃으며 우리를 태워주었다. 우리는 타자마자 억울한 사연을 대충 말했고 그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산후안카피스느라노역에 내릴 때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하지만 차량 점검 미비와 비상 상황에 대한 관계 기관의 미흡한 대처는 용납하기 힘들었다.     또 한 번은 딸과 집에서 먼 곳의 공원으로 갔을 때 일이다. 호수를 몇 바퀴 걷다가 어두워져서 나왔다. 그런데 딸의 옷 주머니에 있어야 할 자동차 열쇠가 없었다. 그때 공원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가 있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혹시 차 열쇠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자기가 열쇠를 주워 어디쯤의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기뻐서 그가 한사코 사양했지만 약간의 돈을 주며 이렇게 라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과연 그가 말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나뭇가지에서 자동차 열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시간에 따라 머물러야 할 장소로 이동하며 성실함과 책임감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 그러나 내 앞에 다가왔던 낭패를 떠올리며 이 계절에 맞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옮겨 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가족이 기다리는데도 스쳐 지나는 사람의 권익을 위해 황금 같은 시간을 할애하며 열불을 내던 젊은 아빠, 곤경에 처할 누군가를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서 있던 어느 가장. 인연이 없는 누군가를 위해 연탄불처럼 뜨거운 마음을 낸 그들에게서 다시 배운다.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길인가?’ 권정순 / 전직 교사이 아침에 자동차 열쇠 기차 출입문 전화 박스

2022-12-07

[이 아침에] 열쇠와 부지깽이

3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가보니 그 사이 또 변했네. 미국으로 돌아 온 지 일주일 그 사이 또 무언가 바뀌고 있을 터.   한국에서 동선이 분주한 방문객에게 자동차는 이제 필수품이다. 특히 지방에 근거를 두고 이곳 저곳 다니려면 자동차 없이는 하루 한 건 약속 지키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국에 갈 때마다 차를 빌린다. 전국을 상대로 영업하는 렌터카 회사가 편리하지만 하루 이틀 빌리고 반납을 했다가 또 빌려야 하는 경우 지방 렌터카가 유리하다.     공주 고속버스터미널 근처 회사에서 차를 빌린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돈을 내면 자동차를 보여 준다. 자동차 점검을 마치면 마지막 순서로 자동차 열쇠를 준다. 이런 것이 익숙한 차 빌리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열쇠를 안 준다. “키는 문자로 보냅니다.” 렌터카 주인이 말한다.     “웽?” 약간 뜨악한 기분.     “전화기에서 문자를 확인하시고 링크를 누르시면 자동차를 열고 닫는 기능이 나옵니다. 문자를 저장하시고 필요할 때 그 기능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주인이 시범을 한 번 보여 준다.     3개월 전만 해도 자동차에 넣고 돌리는 키는 아니지만 버튼이 달린 키를 주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없어졌네. 2년 전 아파트 출입문을 전자식으로 바꾸어서 집 열쇠도 없어졌고, 이제는 자동차를 빌려도 손에 쥐어 주는 게 없다.     문광 스님의 말씀대로 ‘중중무진(重重無盡)’ 화엄 세상 연결고리의 창문이 요즈음 휴대폰이다. 쇳덩이 자동차와 생각 망태 내가 전화기로 연결되다니. ‘열쇠’라는 말도 곧  ‘부지깽이’ 신세가 되겠구나. 부지깽이가 뭔지 모른다고요? 부지깽이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손에 쥐고 불 ‘쑤시개’로 쓰다가 짧아지면 불쏘시개로 써먹는 막대기. 우리들 손자 대가 되면 열쇠라는 말도 지금의 부지깽이처럼 사전을 찾아야 그 뜻을 알까말까하는 상황이 올 터이다.     미국에서처럼 집, 사무실, 자동차 열쇠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일상은 부지깽이 세대의 삶이다.  한국은 저만치 앞서간다.     그런데 휴대폰 없는 사람은? 묻고 보니 부질없는 질문. 한국에서 차를 빌리는 사람이 휴대폰이 없을 확률은 로토에 당첨될 확률보다 적다. 한국을 방문하는 미주 한인들도 가끔은 당황할 듯.  짧은 체류 기간 동안 한국 전화기가 없어서 당연한 일상에 지장을 받는 일이 있을 터이다.   한국은 변하고 있다. 지금 모든 일상 생활의 최소 공약수는 인터넷이 연결되는 전화기, 크레딧 카드, 그리고 글을 읽고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도 불편 없이 돌아간다는 것은 적어도 대다수의 사람이 그 최소한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못 미치는 사람에게는 이런 변화가 야속하기만 할 터이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또 무엇이 변해 있을지? 우리가 떠났던 그때 그 한국은 이제 없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이런 고향은 꿈 속에서나 있다. 한국은 이제 전화기가 모든 문제를 푸는 ‘풀쇠’가 되는 발 빠른 변화의 세상이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부지깽이 열쇠 자동차 열쇠 부지깽이 세대 한국 전화기

20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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